[책]서머싯 몸 단편선_서머싯 몸

2023. 8. 14. 14:34Cultural Advance

ABSTRACT

 사회적 환경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줄까? 사회적 배경, 그 사회에서 받은 교육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문화인류학적 배경을 제외하고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몇몇 단편에서 등장하는 남태평양의 섬들을 보면 흔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남태평양의 사회가 문화, 사회적으로 얼마나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MOTIVE

 이 책은 달과 6펜스로 유명한 서머싯 몸의 단편소설들을 엮은 책이다. 달과 6펜스를 너무 재미있게 봐서,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어서 고른 책이다. 재미와 문학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서머싯 몸의 소설들인 만큼,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서머싯 몸이 여행을 하면서 얻은 다양한 경험에서 시작된 이 소설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한 호흡으로 읽힌다. 서문에서 작가가 언급했듯이, 배경이 같은 이야기들을 한데 묶었기 때문인 것 같다.  

IMPRESSION

EP1. 비

 가치관의 충돌을 보여주는 서머싯 몸 단편선의 첫 번째 에피소드이다. 줄거리는 의사인 맥패일 박사 부부와 선교사 데이비슨 부부가 어쩔 수 없이 정박한 사모아섬에서 겪은 이야기이다. 단편소설 엮음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 걸맞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 한 에피소드만으로도 다른 책 한 권 읽은 만큼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

 맥패일 박사는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다. 맥패일 박사가 강직하고 융통성 없는 데이비슨 선교사를 보면서 하는 말을 보면 맥패일 박사의 성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정작 그들의 종교를 세운 창시자는 그리 배타적이지 않았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패일 박사와 데이비슨 선교사는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를 유지한다. 홍등가 출신의 톰프슨 양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톰프슨 양은 이웰레이 출신의 여성으로 데이비슨 부부와 갈등을 겪는다. 톰프슨 양의 첫인상은 크고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대목에서 느껴지듯이, 이국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데이비슨 부부와 갈등을 겪으면서 원치 않는 곳으로 추방당하게 될 입장에 처하면서 생기를 잃어버린다. 데이비슨 선교사는 톰프슨 양을 전도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모욕할 테면 모욕하라지. 내게 침을 뱉을 테면 뱉으라고 해. 그 여자는 불멸의 영혼을 가졌고, 난 그것을 구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만 하오. 

 그러나 끝내 데이비슨 선교사는 톰프슨 양의 꾀에 넘어가 자살하게 된다. 과연 승리자는 누구일까? 확실한 건 나의 가치관에서는 데이비슨 선교사도, 톰프슨 양도 승리자는 아니다. 데이비슨 선교사는 결국 자신이 그렇게도 믿던 종교에 발목을 잡혔고, 톰프슨 양 역시 다르지 않다. 겉보기에는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진정한 패배자는 톰프슨 양이다. 톰프슨 양은 자신의 수오지심을 되살릴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톰프슨 양의 승리로 인해, 톰프슨 양은 앞으로도 늘 살아왔던 방식을 고수할 것이고, 결국 과오를 뉘우치고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작가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나 같은 사람을 비판하기 위한 소설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데이비슨 선교사의 삶도, 톰프슨 양의 삶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 삶에 정답이 있다고 강하게 확신하는 순간부터 그 삶은 "틀린" 삶이 된다는 명제를 늘 기억해야 한다. 문화상대주의적인 배경에서 시작된 이 소설이, 결국에는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타인을 바라봐야 한다는 결론을 짓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EP2. 에드워드 버나드의 몰락

 단편선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고, 가장 많은 사고를 요구했던 소설이다.

 

 베이트먼 헌터 - 이저벨 롱스태프 - 에드워드 버나드, 세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셋은 모두 친구이지만, 에드워드와 이저벨은 약혼한 사이이다. 이저벨의 삼촌인 아널드 잭슨은 시카고에서 사기죄로 형을 받고는, 다른 섬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다. 이 아널드 잭슨이 있는 섬으로 결혼을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에드워드는 일하러 가게 되고, 가치관의 큰 변화를 겪는다. 눈여겨볼 점은, 베이트먼의 의견과 에드워드의 의견이 둘 다 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널드 잭슨은 선행을 하는 악한인가, 아니면 악행을 저지르는 선인인가?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지. 어쩌면 우리는 이 사람과 저 사람 사이의 차이에 너무 치중하는 게 아닐까? 우리 중 최고의 사람도 죄인이고 최악인 사람도 성인일 수 있어. 누가 알겠나? 

 

난 지금 시카고를 생각하면 돌투성이 칙칙한 잿빛 도시와 끊임없는 소동이 떠오르네. 그 모든 활동이 결국 무엇으로 귀결되지? 거기서 삶의 진수를 끌어낼 수 있을까? 허겁지겁 사무실로 출근해서 밤이 되도록 중창 일하다가 허겁지겁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극장에나 가는 게 우리가 세상에 온 이유인가? 

 

한없이 다채로운 바다와 하늘, 새벽의 신선함, 석양의 아름다움, 그리고 밤의 풍요로운 장엄함이 있을 걸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생이던 곳이 내 손에 의해 정원으로 바뀔 거야. 나는 무언가를 창조할 거야. 세월은 무심히 흘러갈 테고,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었을 때 행복하고 단순하고 평화롭게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보고 싶네. 소소한 방식으로도 나는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것이 너무 시시해 만족감이 없을 거라 생각하나? 알다시피, 세상 전부를 얻어도 자기 영혼을 잃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이로울 게 별로 없지 않나. 나는 내 영혼을 얻었다고 생각하네. 

 에드워드는 점점 이저벨에게 결혼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게 된다. 이를 불쌍하게 여긴 베이트먼이 사업차 섬에 들러서 에드워드를 만나보고 오겠다고 한다. 위의 대화는 에드워드와 베이트먼의 대화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에드워드는 시카고에서 살 때만 하더라도 베이트먼, 이저벨과 똑같은 가치관으로 삶을 살아간다. 부지런히 일하고 명망을 쌓아서 돈을 번다는 지극히 자본주의적 관점에서의 성공을 꿈꾼다. 그러나 사모아섬으로 이주한 뒤에는 그 생각이 송두리째 바뀐다. 이 대화를 천천히 읽다 보면 내가 지금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옳은가? 하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정답은 없다지만, 지금 내 생각으로는 영혼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삶이 맞는 것 같다. 그렇기에 에드워드의 선택이 조금 더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가엾은 에드워드."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이저벨의 입장에서는 모든 성공을 포기하고 현재의 처지에 만족하며 사는 에드워드가 불쌍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불쌍한 사람은 누구일까?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보고, 자신의 가치관을 취사선택한 에드워드와 오로지 하나의 성공을 교육받은 삶과 그 삶에서 얻은 가치관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이저벨. 둘 중 어떤 삶을 나에게 살 것이냐고 묻는다면 에드워드의 삶을 선택하겠다. 에드워드의 선택이 나아서가 아니라, 에드워드는 최소 두 개 이상의 가치관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한 본래적 삶을 살기 때문에.

 

EP11. 삶의 진실들

 이 소설은 헨리 가닛의 아들이야기다. 헨리가닛은 타지로 떠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 가지는 꼭 조심하라고 당부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첫째, 도박, 도박은 하지 말아라. 둘째, 돈, 아무에게도 돈을 빌려주지 말아라. 셋째, 여자, 여자들과 절대 엮이지 말아라. 그 세 가지만 하지 않으면 크게 말썽에 휘말릴 일은 없을 테니 그것만 명심해.

 그러나 헨리가닛의 아들은 아버지의 세 가지 충고를 모두 어겼을 뿐만 아니라, 성공까지 거두게 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있잖아요, 아버지. 아무래도 아버지가 해 주신 조언은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도박하지 말라 하셨는데 저는 했고, 큰돈을 땄어요. 아버지는 돈을 빌려주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는 빌려주었고, 돌려받았어요. 또 아버지는 여자들과 엮이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는 했고, 그 결과 6,000프랑이나 벌었으니까요.

 내가 느낀 점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이 세상 내 뜻대로 되는 게 정말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아들한테 3가지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3가지를 다 하다니.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의 삶에서는 올바른 선택지였던 것들이, 바로 내 삶에 적용되는 순간 오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당신 아들은 복을 타고 태어났어. 길게 보면 그게 똑똑하거나 부유하게 태어난 것보다 낫지 않은가.

 마지막에 헨리 가닛의 친구인 변호사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아버지가 바라보는 아들의 상황과, 아버지의 친구가 바라보는 아들의 상황이 참으로 다르다. 정말 복을 타고 태어났다면, 친구의 말이 맞는 말이 아닐까? 어쩌면 행운과 우연이 겹쳐서 이번만큼은 이런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헨리 가닛이 정말 아들을 분별력 있는 사람으로 키워냈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상대주의에서 길 잃지 않기"

 서머싯 몸 단편선 1에 나온 세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간략하게 내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아무래도 어떤 삶을 선택하는 것이냐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고, 그 누구도 함부로 타인의 삶을 평가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삶을 쉽게 평가하고, 폄하한다. 아마도, 그런 과정에서 겪는 치졸한 자존감이 얻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슬프게도 나 역시 그런 범인의 삶을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아무래도 상대주의/문화상대주의의 테마가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는 상대주의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향점이 되지 않을까? 너무나 많은 다양한 개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과정 중에 우리가 있기 때문에. 그러나 분명한 건 상대주의 역시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문화상대주의적인 입장에서만 삶을 살아간다면 식인을 하는 풍습을 가진 원주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단지 그들의 풍습이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부분일까? 상대주의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분명하고 확고한 (언제나 올바를 수 없고, 수정가능하지만) 자신만의 가치 기준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가끔 수많은 가치관 속에서 혼란이 있을 때, 맹자의 사단지심을 추천한다. 가장 간결하고 직관적으로 사람이 지켜야 할 덕목에 대해 리마인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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