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9. 13:56ㆍCultural Advance
ABSTRACT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 인간의 본성은 선할까? 악할까? 고대부터 이어진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는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다. 사람의 성품을 물에 비유해 보면, 물은 동서가 없어서 어딘가로 길을 내는 데로 흘러가는 것이지 본디부터 어딘가로 흘러가려는 성질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간의 마음 역시 정해진 바가 없이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은 아래(선)를 향해 흐른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
MOTIVE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었다. 한 번은 다른 소설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기회가 닿지 않았었다. 이번에 책을 빌리면서 언뜻 스쳐가는 생각이 나서, 예전부터 필독리스트에 올려놨던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빌려왔다.
IMPRESSION
소년이 온다는 1980년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5월 18일부터 28일까지, 단순히 날짜를 셈해보면 짧지만 그 속에 있었다면 영겁 같았을 열흘동안의 이야기들이 소설에 담겨있다. 주인공은 동호라는 이름의 학생이다. 이 학생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서술되다가, 동호 주변의 다른 인물들이 느낀 광주민주화운동을 함께 보여준다.
그날부터 너는 그녀들과 한 조가 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역시나 한강 작가님의 특별한 문체다. 어떤 사건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듯, 덤덤한 시선으로 서술한다. 그렇지만 실상은 날카롭고 굉장히 해체적인, 파헤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동호가 겪은 일과는 별개로 존재한다는 듯이, 사건과 동떨어진 다른 계(SYSTEM)에서 서술하지만 실상은 동호의 감정, 생각을 명확하고 날카롭게 파헤치는 문체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감정이 특별히 '잘' 전달된다. 친구와의 우정, 가족 간의 사랑 두 가지가 깊이 와닿았다. 사실 나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 그 자체가 예술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과 삶은 그런 의미에서 동떨어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의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내가 느낀 감정과 사고와 삶의 파편들을 그림으로 나타내느냐, 글로 나타내느냐 하는 수단의 차이만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놀라우리만치 섬세하게 표현되고, 명확하게 전달된다. 동호가 정대에게 느끼는 우정, 동호의 가족들이 동호를 기다리는 마음, 옳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두려움. 그 삶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모든 등장인물들이 나름의 예술활동을 하고 있다. 성희가 맞은 뺨을 잊기 위해 애쓰는 모습 자체 하나하나, 결국에는 잊지 못하는 일곱 번째 뺨.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 또렷해지는 아픔들을 보여준다. 그 아픔들(감정)이 모여서 슬픈 소설(예술)을 이루고 있다.
동호는 정대라는 친구가 죽는걸 두 눈으로 목격한다. 그럼에도 차마 자기가 직접 봤다고 말할 수 없다. 아마도 그 상황을 목도했음에도 정대에게 달려가지 못한 나약함이 못내 부끄러워서였을까? 동호는 그 미안함을, 우정을, 그 한을 끝내 갚아낸다. 정대의 시신이 혹시나 제대로 염해지지 못할까, 두려워서였는지 죄책감에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동호는 시신이 모이는 상무관에서 일하기를 자처한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정대의 이야기, 동호의 이야기가 소설의 주된 줄거리다.
권력과, 권력에 맞서는 개인들의 연대를 생각해 보면 참 이질적이다 싶다. 권력이란 것이 개인들 힘의 총합일 뿐인데, 그 힘이 어째서 다른 개인들의 연대를 질타하고 누르고 기어코는 뜻을 꺾게 만들까?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아직도 많은 의견이 분분하다. 내가 그 시대를 살지도 못했고, 그 사실을 눈으로 본 것도 아니기에 나도 사실이다/아니다라는 가치판단은 하지 않겠지만, 소설에 대해 독후감을 쓰는 입장에서 소설의 사건에 대해 작성하겠다. (소설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해야 개연성이 부여된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묘사한 광주민주화운동은 일방적인 학살이고, 인간의 잔악성을 보여준다. 성선설을 지지하는 나조차, 사람은 본디 악하게 태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잔악성을 보여준다. 사람은 본래 악하게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우위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잡음으로 악해지는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소설 속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베트남 전을 경험한 장교가 항복한 학생들을 죽이는 장면. 그 대목을 읽을 때의 섬뜩함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다소 민감한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제외하니 적을 만한 것이 많지 않다. 꼭 한 번 소설을 읽어보기를 추천드린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에 대한 탐구는 고대에서부터 이어졌다. 대개의 탐구들은 귀납적이든 연역적이든 어떤 사실로 귀결되기 마련인데, 인간의 본성, 사랑, 행복과 같은 것들은 아직까지도 연구의 대상이다. 아마도 인간의 감정체계가 상상이상으로 독특하고 파헤치기 힘든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난제에 헤겔의 변증법을 도입해 보면, 성선설(테제)-성악설(안티테제)에서 이어지는 진테제가 나와야 하는데, 명확한 진테제가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성무선악설을 진테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점이, 성무선악설은 테제와 안티테제를 동시에 부인하기에 진테제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대개 이런 문제들은 하나의 정답을 찾아서 다른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개인의 귀납적 추론에 의지해야 한다.
나는 성선설을 지지한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생각한다. 선하게 창조되었으리라 (혹은 발생했으리라) 믿는다. 기본적으로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사람이 착하게 태어나는 것이 좋지. 악하게 태어나는 것보단."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다양한 살을 붙여서 사고기반이 되었다. 악하게 태어났다면 인의로 이루어지는 선이 악 위에 설립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존재론적인 입장에서 봐도 그렇다. 사실 나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좋아하지 않는다.(근데 끌려요...) 그러나 실존주의적 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인사이트는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철학의 일부분만을 가져와서 소설에 대입해 보면,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시민들을 죽인 사람들은 타의에 의한 것일까? 자의에 의한 것일까? 하는 민감한 문제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누가 시킨다고 해서 타인을 죽일 수 있을까? 내가 위협받는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살의를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일까?
인간은 존재 자체의 의미를 탐구하는 현존재로써 비본래적 삶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죽음이 명확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 본래적 삶을 살 수 있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등장인물들, 그 죽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입체적인 인물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사실 사람이 언젠가 죽는다는 명확한 명제를 알고는 있지만, 그 명제를 현실에서 느끼기는 어렵다. 계엄군에 소속되어서 시민들을 죽이는 군인들과, 다른 시민들의 죽음을 목도했음에도(자신의 죽음이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 계엄군에 대항하는 시민군. 둘 줄 누가 더 본래적 삶에 가까운지를 생각해 보면서 읽으면 다른 관점의 해석에 닿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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