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목_박완서
ABSTRACT
나목의 독후감을 검색해서 읽다가 '살아남은 자의 죄 됨'이라는 제목을 읽었다. 이거다 싶었다. 이만큼 나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 나도 저 표현을 빌려서 써본다. 주인공 경이는 어머니의 사랑이 목마르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이 끝나서 집에 가면 경이를 마주하는 것은 한쪽이 무너져 내린 고택과 부연 눈의 어머니뿐이다. 애써 어머니의 까실한 손도 잡아보고 말도 붙여보지만 돌아오는 건 황량한 메아리뿐이다. 그렇게 경이는 외로워한다. 나목의 시대적 배경은 한국전쟁이다. 주인공은 두 오빠가 전쟁 중에 차출될까 오빠들을 행랑채에 숨기자는 묘안을 낸다. 그러나 운명이었을까, 팔자였을까? 포탄 한 발이 오빠들이 숨은 행랑채로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전쟁은 싱싱한 젊음을 앗아간다. 살아남은 사람의 죄 됨. 행랑채로 옮기자는 묘안을 낸 것이, 전쟁 중에 나만 살아남은 것이, 죄책감이 들면서도 그 죄책감과 마주 서지 못하는 마음도 너무 알겠기에 더 가엾은 느낌이 든다.
MOTIVE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가 중에 한 명인 박완서 선생님의 첫 번째 작품이다. 박완서 선생님은 담담하게 현실을 그려내는 듯 그 안에 처절한 실상과 감정이 내재돼 있어서 읽다 보면 이래서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만큼 좋아하는 선생님인데, 독후감은 처음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잘 쓰고 싶고 나목의 진면목을 낱낱이 헤치고 싶은, 그래서 읽고 나면 훌륭한 독후감이다 싶은 글을 쓰고 싶다. 현재의 감상에 충실하면 되는 일인데, 좋아하는 선생님의 작품이다 보니 더 잘 쓰고 싶고 어렵고 유식해 보이는 말로 무실한 나의 독후감을 허영으로 가리고 싶다.
IMPRESSION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은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놓으셨노.
[나목 P.230]
"나 때문이었을까?"
나는 내가 던진 질문의 화살에서 여유 있게 비켜났다.
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쟁 때문이기도 했고 어쩌면 그럴 팔자일지도 모른다.
[나목 P.244]
어쩌다가 딸이 살아남았을까.라는 말이 경이의 마음을 후벼 판다. 어째서 어머니는 살아남은 딸을 앞에 두고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어머니는 딸보다 아들이 중요했을까. 아니면 세 명의 자식 중에 두 명이나 죽은 것이 못내 애통하셔서 그렇게 표현하셨을까. 그 말을 들은 주인공의 심정은 어땠을까. 살고 싶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죽고 싶다. 이렇게 되뇌는 장면이 있다. 아마 무척이나 그랬겠지. 그날 이후로 부연 눈으로 사는 둥 마는 둥 하는 어머니 생각하면 죽고 싶고, 그러다가도 노란 은행잎 보면 살고 싶고, 왜 나만 살아남았나 죽고 싶다가도, 파란 하늘 보면서 누워있으면 살고 싶고. 우리 인생이 그런 거겠지 싶다.
필연적으로 옥희도라는 화가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경아의 사랑의 대상이자 의지의 대상. 경아는 옥희도 화가의 결혼여부와 상관없이 그를 사랑한다. 또 의지한다. 잿빛 휘장을 쳐다보고 있으면 물구나무를 서서라도 이목을 끌고 싶고, 완구점 앞에서 술 마시는 침팬지를 보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겠냐마는 옥희도 씨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옥희도 씨한테는 이미 아내가 있는데, 그 사랑이 이어질 수 있을까? 시작부터 잘못된 걸음을 디딘 건 아닌지.
하고 싶고 적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그러다 보면 나목을 통째로 옮겨와야 할 것 같다. 옥희도 씨와의 서사, 태수 씨와의 사랑 얘기, 다이애나 킴의 이야기, 핏빛 사루비아 이야기, 진이오빠 이야기... 첫 번째 독후감은 가장 날 서고 날것인 느낌 그대로 놔둬보려고 한다. 다음에는 도둑맞은 가난 독후감도 적어보고 싱아도 적어보고 그다음에 나목도 다시 적어봐야지. 아직까지는 몇 번을 읽었어도, 다른 소설을 여러 번 읽었어도 나목이 제일이다.
"이파리 없는 나무를 그리는 화가의 심정은 무엇일까?"
최근 소마미술관에 '한국근현대미술전'을 보러 가서, 박수근 화백이 그린 고목이라는 작품을 봤다. 보면서 친구에게 짤막하게 이파리 없는 나무를 그리는 화가의 심정은 무얼까? 하면서 대화를 했었다. 그리고 독후감을 작성하기 위해 배경조사를 하는데, 글쎄 나목이 박완서 선생님이 PX에서 초상화 작가로 일하던 박수근 화백과 만났었던 일을 계기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다. 정말 너무 놀랐다. 역시 예술은 장르를 불문하며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며. 나는 어떻게 박수근 화백의 고목을 보면서 나목이 떠올렸을까. 그래서 더욱이 독후감을 써야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