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9월이 지나면(When September Ends)_고영동감독
- 평점
- 9.0 (2013.01.01 개봉)
- 감독
- 고형동
- 출연
- 임지연, 조현철, 윤희진
ABSTRACT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성질은 무엇일까? 우리가 흔하게 표현하는 인간성, 인성, Humanity는 무엇일까? 20분 남짓의 짧은 영화지만 보다 보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 감독의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무래도 상업자본의 개입 없이, 짧은 러닝타임으로 만들어야 하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다. 솔직하게는, "작가나 감독이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와, 작품 속에 숨겨놓은 의중을 파악했다."라고 말할 땐 늘 조심스럽다. 실제로 창작자와 이야기를 나눠본 것도 아니고, 주제의 전달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라서 더욱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독립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 상업영화보다 더욱 명확하게 주제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MOTIVE
가수 그린데이(Green day)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 플레이리스트에 담겨있는 노래가 하나 있어서,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노래를 안다고 했더니 갑자기 이 영화를 추천받았다. 연진이 어릴 때 이야기라면서 추천해 주셔서 지하철에서 집중해서 시청했다.
IMPRESSION
플롯은 심플하다. 지연(임지연 배우님)이와 승조(조현철배우님)의 사랑이야기다. 사실은 사랑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다. 승조가 지연이를 처음부터 사랑한 것은 아니다. 동정 내지는 연민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언제 사랑을 느꼈을까? 독립영화이기 때문인지, 감독님의 스타일인지 알 수 없지만 관객으로서 정확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임지연 배우님이 러브레터의 포스터를 따라 하는 장면이다. 러브레터의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 배우분을 따라 하는 장면에서 사랑이 시작된 것 같다. 지연이는 언제 승조를 좋아했을까? 친구도 없이 혼자 다니는 자신을 챙겨줄 때는 호감, 승조가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를 불렀을 때는 사랑.
공모전을 앞두고 지연이는 선영의 설계도를 훔친다. 선영이는 공모전에서도 다수 수상한 적이 있는 유력한 대상 후보다. 그래서 지연이는 선영이가 이제 기회를 후배들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상을 여러 번 했으니 기회를 후배들에게 양보하는 게 미덕일까? 아니면 자신의 분야에 몰두해서 실력을 높이는 것이 미덕일까? 끝없는 정진이 미덕일까?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이 미덕일까?
이런 내막을 모르고 승조는 지연이를 감싸준다. 선영이는 그런 승조에게 말한다. 주변에 사람 없는데 다 이유 있다고. 그 말이 얼마나 냉정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극 중 지연이의 행동을 보면 다소 우울하고 개인적인 성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사람이 없었을까? '주변에 사람이 없는' 사람들을 좀처럼 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천천히 삶을 돌아보면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타인이 보기에 나 역시 그런 사람(주변에 사람이 없는)이라고 느끼는 누군가가 있었는지도 모르일이고,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 몇 떠오르기도 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는 이유는 대개 속한 단체와 그 사람의 성격이 맞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맞지 않는 옷을 입어서 어색한 모습이기에 사람들이 쉽사리 친밀감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이 얼마나 우스운지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이 참 쉽게도 변한다. 어제 좋았던 사람이 오늘 싫어지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결과론적으로만 본다면, 맞는 옷으로 갈아입던 옷에 자신을 맞추던 노력을 하면 나아지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연이는 선영이의 공모전 설계도를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설계도를 돌려주는 과정에서 선영이와 선영이의 친구들에게 걸리고 만다. 그런 지연이를 구해주는 건 역시나 승조다. 승조는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연이 대신에 범인 행세를 해서 지연이를 구해준다. 그러나 결국 지연이는 공모전에 자신의 설계도를 제출하지 않고 승조에게 선물로 준다. 이 부분이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지연 본인의 인간성 회복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지연이 역시 다른 사람의 설계도를 훔쳐가면서까지 얻고 싶었던 자리를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의미에서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근묵자흑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뜻이다. 본 뜻은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뜻이지만, 사람은 나쁜 것만 닮지 않는다. 지연이는 승조를 가까이함으로 승조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 간의 인간관계에서 배우고 영향을 받는다. 그런 삶의 단편들이 모여서 인생을 이룬다. 어떤 사람을 가까이해야 하는지 신중하게 돌이켜봐야 하는 교훈을 배울 수 있다.
"9월이 끝나면 깨워주세요"
9월이 지나면 깨워주세요. 내 인생의 노래야.
왜요? 9월에 무슨 일 있었어요?
그냥 9월은 항상 좀 힘들더라고.
지금도요?
지금은 그냥 그래.
누구나 힘들 때가 있다. 꼭 9월이 아니더라도. 순간일 수도 있고, 어떤 기억이 떠올라서 그 계절이 싫을 수도 있다. 이와 반대로 어느 순간은 꼭 맘에 드는 날도 있다.
사랑은 한 가지 감정이 아니다. 다양한 감정의 복합체를 그때그때 구분해서 나열하기가 어려워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돌아보는 나의 여름끝무렵과 가을초 무렵. 나의 9월은 어땠고, 10월은 어떻게 지나갔지? 나의 삶을 다양한 경험과 행복으로 채우려는 노력을 너무 안일하게 한 건 아닌지 돌아봤다.
버려진 남북공동선언 강당을 고른 이유, 승조가 9월이 싫은 이유 / 러브레터를 좋아하는 이유, 안도 다다오를 좋아하냐고 묻는 지연이의 모습이 공통점을 찾아가려는 노력이었는지. 다양한 궁금증은 남겨두고 다시 한번 영화를 보려고 한다.